인생, 예술 - 윤혜정

b__ono__ng 2023. 10. 1. 17:24

인생, 예술 - 윤혜정

 

윤혜정 작가의 인생, 예술은 여러 예술가의 삶과 관념을 중심으로 작업물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견해, 경험을 담아낸 글이다.

분류를 감정(Emotion), 관계(Relation), 일(Work), 여성(Woman), 일상(Life)의 다섯 개로 나누어, 각 예술가가 작품을 전개한 중심 관념을 기준으로 소개한다.

여느 예술 서적이 그렇듯, 한 예술가에 대한 삶을 중심으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담는 비슷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서적이 훌륭한 이유는 단연코 윤혜정 작가의 문체에 있다.

 

얼마 전, 영화 기생충(2019)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한 줄 평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이동진 평론가는 영화 기생충에 대해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라는 평론을 작성했는데, "명징", "직조", "신랄" 등의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이동진 평론가의 입장은 훌륭한 영화를 평론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이상적인 단어를 골라야 했고, 이 단어들은 그렇게 선택된 단어인 것이다.

 

인생, 예술도 상당히 어려운 단어와 문장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문장을 몇 가지 톺아보자면,

에세이만의 개인성과 일상성, 보편성고 일반성은 글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 지점인 이해와 공감의 상태로 읽는 이를 이끈다.
'진공의 공간'이라는 건 내 눈앞의 미술 작품과 그걸 보는 내 감정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그 진공성은 익숙한 의식의 흐름에 균열을 낸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각해 내는 그의 작품과 함께하는 동안, 당연하게도 세상의 그것과는 다른 속도의 시간이 나를 지배한다.
화가로서의 열패감과 열망, 인간으로서의 순진무구함, 시대인으로서의 사유와 분노 등은 세찬 바람이 되어 그녀(최욱경)의 머릿속과 폐부를 휘저었고, 수십 년 후에 그녀의 작품 앞에 선 나를 춤추게한다. 부딪히고 상처 입고 고뇌한 인간의 이 생생한 절규는 공감각적 심상으로 환원된다.

 

분명 단어의 선택과 문장의 구조가 소설을 읽듯 직관적으로 읽히지 않음에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추상과 감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작품을 마주한 작가가 압도되는 느낌을 그대로 전달받듯.

세세한 단어의 선택과 문장의 구성 때문인지, 글 전체의 단단한 구성 때문인지. 윤혜정 작가의 필력과 문장력이 묻어나는 글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온다.

윤혜정 작가 또한 훌륭한 작가와 작품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이상적인 단어를 고른 것이 아닐까.